다시 종이 책
December 12th, 2024한 10년 전부터 종이책을 잘 사지 않게 되었다. 자취하며 이사가 잦았을 때, 종이책은 짐을 옮길 때마다 큰 부담이었으니까. 결혼하고 나서는 이삿짐을 내가 옮기지 않게 됐지만, 그때 생긴 습관 때문인지 여전히 책은 전자책으로만 읽었다. 킨들은 너무나 편했고, 종이책으로 읽는 게 어떤 느낌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얼마 전 서점에서 책을 구경하다가 삼체 시리즈를 실물로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게 이렇게 두꺼운 책이었구나. 읽을 때도 꽤 양이 많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로 두꺼울 줄은 몰랐다. 그때만 해도 역시 전자책이 최고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종이책이 다시 좋아진 계기는 별건 없다. 애들이랑 서점에서 책을 구경하던 중, 요즘 나오는 책들이 너무 예뻐 보였다. 이렇게 소유욕을 자극하는 예쁜 책들이나 실물이 없는 전자책이나 사실 가격에는 별 차이가 없다(나는 이게 아직도 좀 신기하다). 지금 집에는 책을 놓아둘 공간도 많고, 딱히 이사를 자주 다니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종이책을 읽지 않을 이유가 뭘까? 그런 생각이 들었고, 결국 그날 책을 한 권 사들고 집에 왔다.
소파에 앉아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며 생각했다. 아, 이런 기분이었구나. 물론 불편한 점도 있다. 꽤 두꺼운 책이라 들고 다니기엔 부담스럽다. 하지만 장점도 많다. “여기가 무슨 내용이었더라? 이 사람이 누구였지?”라는 의문이 들 때, 읽었던 부분으로 왔다 갔다 하기가 너무 편하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봤지만, 결국 가장 큰 이유는 소유욕인 것 같다. 자랑도 하고 싶다. 누구한테 자랑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내 방을 보여주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문득 젊었을 적 성수동에서 자취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책장도 없이 바닥에 일렬로 늘어놓았던 책들. 그때는 정말 책을 많이 읽었던 것 같다.